[현장에서] 비 내린 도산서원에서 만난 퇴계의 정신…안동이 품은 500년 공부의 길FICB 한국와인기사단 안동 와인투어 일정으로 7월 7일 도산서원 방문…선비정신과 지역문화 함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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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 FICB 한국와인기사단 안동 와인투어를 주관한 김동준 총사령관(오이코스대학교 호텔외식와인경영전공 주임교수)이 참가자들과 7월 7일 도산서원 전교당 앞에서 퇴계 이황의 학문과 선비정신을 되새기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오영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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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고, 안동=오영세 기자] 장맛비가 조용히 내리던 7월 7일 오전, 경북 안동 도산서원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철학이 5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살아 있는 학교'였다. 빗방울이 기와를 적시고 흙길을 감싸는 고요한 풍경 속에서 퇴계 이황(1501~1570)의 학문과 선비정신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었다.
이번 도산서원 방문은 7월 6일부터 7일까지 열린 '2026 FICB(국제와인기사단연맹) 한국와인기사단(김동준 총사령관, 오이코스대학교 호텔외식와인경영전공 주임교수) 기사작위식 및 안동 와인 투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둘째 날 일정으로 도산서원을 찾아 안동의 대표 문화유산과 퇴계 이황의 학문세계를 직접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 ▲ 변동현 안동국제컨벤션센터 단장이 도산서원 입구에서 한국와인기사단 참가자들에게 도산서원의 역사와 퇴계 이황의 생애,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오영세 기자) |
이날 현장 안내와 해설은 안동국제컨벤션센터 변동현 단장이 맡았다. 변 단장은 도산서원의 역사와 건축, 퇴계의 생애와 사상, 주요 건물의 의미를 차례로 설명하며 "도산서원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퇴계의 교육철학과 선비정신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과 정조가 특별 과거시험인 '도산별과'를 개최했던 역사적 의미까지 설명하며 참가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도산서원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 이황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1574년 건립을 시작해 이듬해 사액서원이 됐으며, 2019년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19세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아 철거되지 않은 몇 안 되는 서원 가운데 하나다.
![]() ▲ 2026 FICB 한국와인기사단 안동 와인투어 참가자들이 퇴계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 툇마루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도산서원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고 있다. (사진=오영세 기자) |
취재진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퇴계가 직접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이었다. 1560년에 완성된 이 건물은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화려한 장식 하나 없이 소박하게 지어진 공간은 평생 검소함을 실천했던 퇴계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도산서당 앞 작은 연못 정우당에는 연꽃이 심겨 있다. 진흙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군자는 세속 속에서도 절개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퇴계의 철학이 담긴 공간이다.
이어 둘러본 농운정사는 제자들이 머물며 공부하던 기숙사다. 건물은 '工(공)'자 형태로 설계돼 공부와 휴식이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됐다. 공부만을 강요하기보다 삶과 인격을 함께 기르는 교육철학이 건축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책을 보관하고 열람했던 광명실은 "수많은 책이 세상을 밝힌다"는 뜻을 담고 있다. 습기를 막기 위해 높게 지어진 누각 형태의 건물은 학문을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여겼던 퇴계의 가치관을 상징한다.
또한 장판각은 도산서원에서 간행한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퇴계의 문집과 언행록, 친필 글씨 등이 새겨진 귀중한 목판들이 보관됐으며, 현재는 보존과 연구를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겨 관리되고 있다.
전시관에서는 퇴계의 삶과 학문을 보다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1501년 안동 온혜리에서 태어난 퇴계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학문적 재능을 보였고, 여러 차례 과거시험에 도전한 끝에 34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승문원과 예문관, 성균관 대사성 등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지만 권력보다 학문을 선택했다. 병환과 학문 연구를 이유로 수십 차례 사직을 청했고, 왕은 그의 인품과 학문을 아까워해 번번이 다시 불러들였다.
![]() ▲ 도산서원 전교당에서 뒤에서 바라본 고즈넉한 서원 전경. 장맛비에 젖은 기와와 마당이 500년 선비정신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사진=오영세 기자) |
52세 무렵 고향으로 돌아온 퇴계는 한서암을 짓고 후학 양성에 전념했으며, 도산서당을 중심으로 영남학파를 이끌었다. 그의 곁에는 전국 각지에서 제자들이 모여들었고, 이곳은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가 됐다.
전시관은 퇴계 사상의 핵심을 '경(敬)'이라는 한 글자로 설명한다. 마음을 항상 바르게 하고 행동을 삼가며, 앎과 실천을 하나로 만드는 삶이다. 그는 진리는 책 속이 아니라 일상 속 실천에서 완성된다고 보았다.
대표적인 주리론과 사단칠정론은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깊이 탐구한 조선 성리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껴지는 퇴계의 철학은 어려운 이론보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실천적 삶에 가까웠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율곡 이이와의 관계였다. 흔히 두 사람을 학문적 경쟁자로 기억하지만, 전시 자료는 서로를 깊이 존중했던 선후배이자 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퇴계가 세상을 떠나자 율곡은 제문을 올려 애도했고, 선조에게 시호를 내려달라고 청할 만큼 깊은 존경을 표했다.
![]() ▲ 시사단(試士壇)이 안개가 내려앉은 낙동강과 들녘을 배경으로 고즈넉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조선 정조가 1792년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특별 과거인 '도산별과'를 실시한 역사적 장소로,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제33호로 지정돼 있다. (사진=오영세 기자) |
도산서원에는 정조의 발자취도 남아 있다. 정조는 1792년 퇴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특별 과거시험인 도산별과를 열었다. 전국에서 7228명의 유생이 응시했고, 정조는 직접 11명을 선발해 시상했다.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이고 학문의 전통을 계승하려 했던 국왕의 뜻은 지금도 시사단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 ▲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2026 FICB 한국와인기사단 안동 와인투어 참가자들이 도산서원을 둘러보며 퇴계 이황의 학문과 선비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탐방하고 있다. (사진=오영세 기자) |
비는 끝내 그치지 않았지만 도산서원의 풍경은 오히려 더 깊은 운치를 자아냈다. 빗물에 젖은 기와와 흙길, 오래된 나무와 담장은 퇴계가 평생 지키려 했던 절제와 담백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번 안동 와인 투어는 단순한 와이너리 방문을 넘어 안동의 역사와 문화, 인문정신을 함께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참가자들은 도산서원에서 퇴계의 삶과 철학을 돌아본 뒤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지역 문화와 와인 산업이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직접 경험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도산서원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아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500년 전 퇴계 이황이 남긴 그 질문은 비 내리는 도산서원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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