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아버지가 메는 캐디백, 언니가 함께 걷는 18홀"…프로골프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선수, 가족갤러리는 선수 가족과 기자뿐…조용한 1라운드에서 더욱 크게 다가온 가족의 응원
|
![]() ▲ 2026 오로라월드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김아현과 언니 캐디를 비롯해 조정민·정수빈과 가족 캐디들이 다음 홀로 이동하고 있다. 갤러리가 드문 이른 티오프의 고요한 코스에서 가족들은 선수와 함께 18홀을 걸으며 가장 가까운 동반자가 됐다. (사진=오영세 기자) |
"뉴스는 보물이다. 뉴스보고가 지킨다. – News Repository –"
[뉴스보고, 원주=오영세 기자] 30일 오전 7시 23분.
서울의 수은주가 30도를 넘나들었지만 강원도 원주시 오로라 골프&리조트는 아직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2026 오로라월드 챔피언십 1라운드가 막 시작된 시간, 코스는 여느 대회와 달리 고요했다.
김아현, 정수빈, 조정민이 출발한 조를 따라 걷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조정민 선수의 어머니.
정수빈 선수의 어머니.
그리고 취재 기자.
이른 티오프와 1라운드라는 특성상 갤러리들의 발길은 거의 없었다. 환호도, 박수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코스에는 클럽이 공을 맞히는 소리와 선수와 캐디가 나누는 짧은 대화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적막함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온 것이 있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정수빈의 캐디는 아버지였다.
조정민의 캐디 역시 아버지였다.
김아현은 언니가 캐디백을 메고 18홀을 함께 걸었다.
프로골프에서 캐디는 단순히 가방을 메는 사람이 아니다.
거리와 바람을 계산하고, 핀 위치와 그린 경사를 읽으며 클럽을 선택한다. 선수와 함께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매 샷마다 최선의 선택을 만들어가는 또 한 명의 경기 운영자다. 18홀 동안 선수와 캐디의 호흡은 성적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서로의 생각을 읽고, 흔들리는 순간에는 중심을 잡아주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과감한 선택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세 선수 곁에는 누구보다 선수의 골프를 잘 이해하는 가족이 있었다.
기자에게는 작은 아쉬움도 있었다.
프로 대회에서는 경기 중 선수나 캐디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취재기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묵묵히 뒤를 따라 걸을 뿐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말보다 행동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클럽을 건네는 손짓, 거리 측정기를 확인하는 모습, 서로의 눈빛을 읽는 순간들.
가족은 응원단이 아니라 선수와 함께 경기를 치르는 또 한 명의 동반자였다.
![]() ▲ 김아현이 7번 홀(파5)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하고 있다. (사진=오영세 기자) |
![]() ▲ 김아현이 1번 홀에서 세컨드샷을 하고 있다. 언니가 캐디백을 메고 공의 방향을 함께 지켜보며 18홀 내내 동생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가 됐다. (사진=오영세 기자) |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김아현의 7번 홀(파5)이었다.
1번 홀 버디로 산뜻하게 출발했지만 3번과 4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며 흐름이 끊겼다.
그러나 7번 홀에서 김아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약 246야드의 티샷을 페어웨이에 안착시킨 뒤 228야드가 넘는 거리를 과감하게 그린으로 직접 공략했다.
세컨드샷은 그린 앞 벙커 상단에 떨어졌고, 이어진 세 번째 어프로치 샷을 홀 약 1.3m에 붙였다. 마지막 버디 퍼트를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이날 가장 인상적인 버디를 만들어냈다.
최종 성적은 5오버파 77타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 한 홀은 김아현 특유의 공격적인 승부 근성과 두려움 없는 플레이가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었다.
![]() ▲ 정수빈이 1라운드 8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사진=오영세 기자) |
![]() ▲ 정수빈이 4번 홀에서 세컨드샷을 하고 있다. 아버지는 캐디로 함께 코스를 돌며 딸의 플레이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원했다. (사진=오영세 기자) |
정수빈은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았다.
1번 홀(파5) 티샷이 왼쪽 나무를 맞고 페널티구역으로 들어가 1벌타를 받았지만,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가며 보기에 그쳤다.
이어 2번 홀(파4)에서 곧바로 버디를 잡아 첫 홀의 아쉬움을 털어냈고, 3번 홀 보기 이후 6번 홀 버디로 다시 균형을 맞췄다.
전반을 이븐파(36타)로 마친 정수빈은 후반 들어 12번 홀과 13번 홀에서 연속 버디를 기록했고, 16번 홀에서도 버디를 추가하며 순위를 끌어올렸다. 17번 홀 보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2언더파 70타로 1라운드를 마쳤다.
첫 홀 악재에도 곧바로 버디로 분위기를 되찾고 끝까지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은 집중력이 돋보인 경기였다.
그 곁에는 끝까지 같은 걸음으로 딸과 호흡을 맞추며 클럽을 건네고, 거리를 확인하고, 다음 샷을 준비한 아버지가 있었다.
말보다 신뢰가 먼저였다.
![]() ▲ 조정민이 1라운드 6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사진=오영세 기자) |
![]() ▲ 조정민이 4번 홀 벙커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가운데 아버지가 캐디백 곁에서 다음 플레이를 준비하며 딸의 샷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오영세 기자) |
조정민의 곁에도 아버지가 있었다.
경기를 마친 뒤 만난 조정민의 아버지는 담담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버지의 고향이 안동인 조정민은 대구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건너가 약 10년 동안 생활하며 골프를 시작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KLPGA 투어 통산 5승을 거둔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엇인지 한 번 더 뛰어오르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통산 5승을 거둔 딸을 향한 욕심이라기보다, 누구보다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본 아버지의 바람에 가까웠다.
18홀 내내 캐디백을 메고 딸과 함께 코스를 걸었던 그의 뒷모습은 그 말의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골프에서는 흔히 캐디를 '제2의 선수'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날 기자가 본 캐디들은 조금 달랐다.
아버지였고,
언니였고,
가족이었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전략을 세우는 동반자였고, 가장 먼저 선수의 흔들림을 알아채는 사람이었으며, 누구보다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걸어온 응원단이었다.
오전 햇살이 코스를 비추기 시작할 무렵에도 오로라 골프&리조트는 여전히 조용했다.
함성도, 박수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적막한 18홀에서 가장 크게 느껴진 것은 가족의 존재였다.
우승을 만들어내는 것은 선수의 실력일지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것은, 어쩌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말없이 캐디백을 메고 함께 걸어주는 가족인지도 모른다.
이날 오로라 골프&리조트에서 기자가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버디도, 이글도 아니었다.
선수보다 반걸음 뒤에서, 그러나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18홀을 함께 걸어준 가족의 발걸음이었다.
기사제보: news-repository@naver.com
![]() |
![]() |
![]() |
![]() |
![]() |